강경희 기자 khkang@chosun.com | 2009/09/26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릭 매스킨 교수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던 지난 21일 오전 8시 연세대 서울 캠퍼스의 상경대학 건물 B121호 강의실. 통상적인 대학 첫 강의보다 한 시간 빠른 오전 8시에 강의가 시작됐는데도 100명 가까운 학생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이날 강의는, 지난 2007년 '메커니즘 디자인(mechanism design)' 이론으로 레오니드 후르비츠, 로저 마이어슨 교수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에릭 매스킨(Eric Maskin·사진) 교수가 이 대학 경제학과 3~4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게임 이론'을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매스킨 교수는 SK 석좌교수 자격으로, 올 가을 서울에 머물면서 한 학기 동안 연세대 상경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이날 그와의 인터뷰는 2시간짜리 수업이 끝나고도, 1시간 넘게 기다려서야 시작할 수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학생을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앉혀놓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연구실엔 텅 빈 책장이 덩그러니 벽에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 달랑 컴퓨터만 있었다.
―책도 없는 연구실에서, 한 학기 동안 연구 활동은 어떻게 하시나요?
"문제 푸는 건 연필하고 종이만 있으면 되고, 인터넷이 있잖아요. 경제학 연구는 더 이상 책이 필요하지 않아요. 모든 최신 자료와 중요한 연구 논문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만 있으면 되지요."
―해외 대학에서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으세요?
"중국, 대만, 일본, 한국에 일주일 정도씩 단기 특강을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몇 달씩 외국에 머물며 강의하기는 처음입니다."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합니다. 좀 쉽게, 간략히 설명해 주세요.
"메커니즘 디자인이란 한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도(메커니즘)'를 '설계(디자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의 목표가 교통 혼잡을 줄이는 것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걸 달성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첫째는 교통 체증이 심한 구역을 통제해 버리는 방법, 둘째로는 혼잡통행료를 징수하는 방법, 셋째는 대중교통을 적극 지원해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서 자가용 이용률을 낮추는 방법, 넷째는 휘발유에 세금을 높게 매겨 자가용을 갖고 다니기 부담스럽게 만드는 방법 등이 있겠지요. 이런 것들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을 섞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 가운데 어떤 것이 최적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메커니즘 디자인입니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면서 자유방임에 가까운 시장 경제를 지향해온 미국에서도, 매스킨 교수와 같은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가들은 자유시장경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라는 정부의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경제학에서 게임 이론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 자원이 비교적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시장 경제와는 달리, 공공재 등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데 주목하는 것이 '메커니즘 디자인'이다. 가령 정부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정책을 만들어도, 당초 의도한 효과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앞세워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공해 배출을 줄이라고 하면 기업들은 오염 처리 비용 때문에 회사가 망할 지경이라고 앓는 소리를 한다. 마을에 다리를 놓으려고 하면, 찬성론자들은 필요성을 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피해를 과장한다. 그 사이에서 정부는 경매, 자진신고제 등 '솔로몬의 지혜'를 동원하는 공공 정책으로 보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유도하게 만드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가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이다.
―언제, 어떻게 '메커니즘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신 건가요?
"내가 '메커니즘 디자인'을 만든 건 아니고,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후르비츠 교수가 창시했습니다. 나는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이 어디에 잘 적용되고 아닌지에 대한 해답을 더 연구한 것이지요."
―'메커니즘 디자인'은 어떤 분야에 적용되는 것인가요?
"정부나 공공 당국이 각각의 정책을 입안할 때 '메커니즘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교통, 환경오염, 기후변화, 세금 제도, 소득 재분배 등에 적용할 수 있지요. 민영화 과정에서도 '메커니즘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매스킨 교수는 미국 통신위원회가 주파수 대역을 매각하기 위해 경매를 실시한 것 등을 사례로 꼽으며, 공공재를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경매 등의 방식을 동원하는 것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메커니즘 디자인'의 성공 사례라고 설명한다.
―선거 제도에 대한 논문도 쓰셨지요? 그런 것도 '메커니즘 디자인'에 해당되나요?
"선거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한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떤 선거 제도가 최선의 방법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메커니즘 디자인'이지요."
―한국의 대선 투표는, 50% 미만을 얻어도 무조건 최다 득표자가 승자가 됩니다. '메커니즘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선거 제도는 어떻습니까?
"별로 바람직한 제도가 못됩니다. 가령 A, B, C 세 후보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매스킨 교수는 종이를 가져와 연필로 열심히 적어가면서 설명했다). 유권자의 35%가 A-B-C 순을, 33%가 C-B-A 순을, 32%가 B-A-C 순으로 지지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유권자의 선호도를 따져보면 압도적 다수인 65%(33%+32%)가 A보다는 B를, 역시 압도적 다수인 67%(35%+32%)가 C보다는 B를 선호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B가 아니라 단순한 다수결 원칙에 따라 35%를 얻은 A가 당선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반영한 선거 제도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런 선거 제도는 유력 후보가 아닌 나머지 제3의 후보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쳐 결과를 바꿔버릴 수도 있어요. 가령 이변을 일으켰던 지난 2002년의 프랑스 대선을 생각해 보세요. 우파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 좌파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경합을 벌이는데,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파 르펜이 2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는 바람에 유력 후보였던 조스팽이 1차 투표에서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그렇다면 이런 대선 제도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나요?
"가령 미국 샌프란시스코시(市)는 시장 선출 방식을 이렇게 바꿨어요. 유권자들이 단 한 명의 후보만 찍는 게 아니고, 1순위 후보를 찍고, 나머지 후보들에 대해서도 차순위를 매길 수 있게 했어요. 이 경우, 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주고 이를 나중에 합산하면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득표에 좀 더 잘 반영할 수 있게 되지요. 가령 나는 C 후보를 찍지만, 절대로 B후보가 당선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C 후보를 1순위로, A후보를 2순위로, B후보를 3순위로 매기는 것이지요. 그에 따라 가중치를 주면 득표 결과에서 그런 유권자 의중이 반영될 수 있어요."
―한국 대선에는 10여명의 후보가 나옵니다. 그중에서 유의미한 후보는 2~3명에 불과하지요. 나머지 후보는 유권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일일이 다 순위를 매기나요? 그런 제도가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요?
"유권자가 후보 10명 모두에 대해 다 순위를 매길 필요는 없습니다. 유권자에게 옵션을 주는 거지요. 원하는 1명만 찍을 수도 있고, 2~3명에게만 순위를 매길 수도 있게 하는 것이지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위기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세요?
"적절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은 데서 온 실패라고 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너무 많이 대출을 해주는 바람에, 은행이 너무 많은 리스크(위험)를 떠안게 된 데서 비롯됐습니다. 문제는 금융 부문이지요. 과도한 대출을 해주는 것이 한 은행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은행들에도 영향을 미쳐 너도나도 대출 경쟁이 벌어졌지요. 은행마다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지 못하게 하는, 적절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입니다."
―미국은 왜 적절한 규제를 통해 심각한 위기를 막지 못하고 금융회사를 방치한 것인가요?
"하하, 좋은 질문인데요. 정부가 개입하는 것보다는, '시장이 규제보다 훨씬 낫다'는 이념에 미국이 그동안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이지요. 이제, 좋은 규제를 창출하는 것은 '메커니즘 디자인'의 영역이 되겠네요, 하하하."
―그렇다면 교수님은 적절한 금융 규제 장치만 있었더라면 이번 같은 금융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시는 건가요?
"역사적으로 위기는 늘 있었습니다. 위기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해도, 적절한 규제를 통해 위기의 강도를 줄일 수는 있었겠지요."
―그동안 주류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가정 위에서 전개되어 왔습니다. 이번 위기로 인해, 기존 경제학은 더 이상 쓸모없어진 것인가요?
"설사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전체 시스템이나 시장이 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건 아닙니다.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이 되어, 그 결과로 사회 전체에 비효율적, 비합리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합리성만으로, 규제받지 않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건 아닙니다.
가령 환경오염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운전을 하면 매연을 내뿜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운전하는 것이, 내게는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내뿜는 매연이 당장 내게 심각한 영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모든 개개인이 스스로의 관점에서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결정을 내려서, 반드시 전체에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닙니다. 정부가 세금을 부과한다든가, 적절한 환경 규제를 가해 오염을 막아야 할 상황이 되어버리지요. 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많은 오염을 배출하지 않도록 규제를 가하는 것처럼, 은행도 너무 많은 리스크를 떠안지 않게 하는 규제가 필요합니다."
―글로벌 위기 이후 금융 산업의 규제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어떤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하나는 상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최소한의 대출 기준을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은행이 과도한 위험을 떠안지 못하도록 레버리지에 대한 규제를 만드는 것이지요."
―이번 위기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가장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린다고 여겨져 온 미국 월가에서 시작돼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습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은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요?
"메이도프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이번 위기 때 사기 사건도 드러났습니다. 물론 윤리적인 측면을 더 강조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월가 금융맨들의 부도덕한 행위에서 이번 위기가 초래됐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개별 은행의 이해관계와 전체 금융 시스템 간의 충돌(conflict) 상황이 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따라서 금융인들에게 윤리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부가 룰(rule)을 만드는 것입니다. 금융 산업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위기의 원인이 된 이런 충돌 상황을 줄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원래 수학을 전공하셨는데, 왜 경제학으로 바꾸셨나요?
"저명한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 교수의 영향이 컸습니다. 수학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경제학은 세상을 돕는 데 힘을 발휘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특히 매력을 느꼈습니다."
―노벨상 수상 이후 삶이 달라졌나요?
"지금처럼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하하하. 전 세계로부터 초청을 받아 여행도 많이 하게 됐지요. 하지만 노벨상이 결코 '목표'는 아니었어요. 수상 기회가 극히 적은 노벨상이란 일종의 복권처럼 주어지는 행운이니까 내가 설정할 수 있는 합리적 '목표'는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가진 분야에 꾸준히 집중해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겠지요."
에릭 매스킨 교수는
1950년 미국 뉴욕 태생. 1972년 하버드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1976년 응용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1977~1984년)와 하버드대(1985~2000년)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데 이어, 2000년부터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있는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석좌교수로 있다. 1930년 설립된 고등연구소는 수학·자연과학 등 순수 학문의 연구로 명성이 드높은 세계적 연구기관이다. 과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연구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이 연구소 출신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12명에 달한다. 아인슈타인과 인연이 남다른지, 현재 매스킨 교수가 살고 있는 고등연구소 사택은 예전에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동안 학술지에 110여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경제연구 리뷰(Review of Economic Studies)' 등 주요 학술지의 편집장도 역임했다. 2003년 계량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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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에릭 매스킨 교수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던 지난 21일 오전 8시 연세대 서울 캠퍼스의 상경대학 건물 B121호 강의실. 통상적인 대학 첫 강의보다 한 시간 빠른 오전 8시에 강의가 시작됐는데도 100명 가까운 학생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이날 강의는, 지난 2007년 '메커니즘 디자인(mechanism design)' 이론으로 레오니드 후르비츠, 로저 마이어슨 교수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에릭 매스킨(Eric Maskin·사진) 교수가 이 대학 경제학과 3~4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게임 이론'을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매스킨 교수는 SK 석좌교수 자격으로, 올 가을 서울에 머물면서 한 학기 동안 연세대 상경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이날 그와의 인터뷰는 2시간짜리 수업이 끝나고도, 1시간 넘게 기다려서야 시작할 수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10명 남짓한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학생을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앉혀놓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연구실엔 텅 빈 책장이 덩그러니 벽에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 달랑 컴퓨터만 있었다.
―책도 없는 연구실에서, 한 학기 동안 연구 활동은 어떻게 하시나요?
"문제 푸는 건 연필하고 종이만 있으면 되고, 인터넷이 있잖아요. 경제학 연구는 더 이상 책이 필요하지 않아요. 모든 최신 자료와 중요한 연구 논문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만 있으면 되지요."
―해외 대학에서 이렇게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으세요?
"중국, 대만, 일본, 한국에 일주일 정도씩 단기 특강을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몇 달씩 외국에 머물며 강의하기는 처음입니다."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은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합니다. 좀 쉽게, 간략히 설명해 주세요.
"메커니즘 디자인이란 한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도(메커니즘)'를 '설계(디자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의 목표가 교통 혼잡을 줄이는 것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걸 달성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첫째는 교통 체증이 심한 구역을 통제해 버리는 방법, 둘째로는 혼잡통행료를 징수하는 방법, 셋째는 대중교통을 적극 지원해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서 자가용 이용률을 낮추는 방법, 넷째는 휘발유에 세금을 높게 매겨 자가용을 갖고 다니기 부담스럽게 만드는 방법 등이 있겠지요. 이런 것들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을 섞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 가운데 어떤 것이 최적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메커니즘 디자인입니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면서 자유방임에 가까운 시장 경제를 지향해온 미국에서도, 매스킨 교수와 같은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가들은 자유시장경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라는 정부의 '보이는 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경제학에서 게임 이론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 자원이 비교적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시장 경제와는 달리, 공공재 등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데 주목하는 것이 '메커니즘 디자인'이다. 가령 정부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정책을 만들어도, 당초 의도한 효과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앞세워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공해 배출을 줄이라고 하면 기업들은 오염 처리 비용 때문에 회사가 망할 지경이라고 앓는 소리를 한다. 마을에 다리를 놓으려고 하면, 찬성론자들은 필요성을 과장하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피해를 과장한다. 그 사이에서 정부는 경매, 자진신고제 등 '솔로몬의 지혜'를 동원하는 공공 정책으로 보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유도하게 만드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가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이다.
―언제, 어떻게 '메커니즘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신 건가요?
"내가 '메커니즘 디자인'을 만든 건 아니고,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후르비츠 교수가 창시했습니다. 나는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이 어디에 잘 적용되고 아닌지에 대한 해답을 더 연구한 것이지요."
―'메커니즘 디자인'은 어떤 분야에 적용되는 것인가요?
"정부나 공공 당국이 각각의 정책을 입안할 때 '메커니즘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교통, 환경오염, 기후변화, 세금 제도, 소득 재분배 등에 적용할 수 있지요. 민영화 과정에서도 '메커니즘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매스킨 교수는 미국 통신위원회가 주파수 대역을 매각하기 위해 경매를 실시한 것 등을 사례로 꼽으며, 공공재를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경매 등의 방식을 동원하는 것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메커니즘 디자인'의 성공 사례라고 설명한다.
―선거 제도에 대한 논문도 쓰셨지요? 그런 것도 '메커니즘 디자인'에 해당되나요?
"선거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지요. 한 사회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떤 선거 제도가 최선의 방법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메커니즘 디자인'이지요."
―한국의 대선 투표는, 50% 미만을 얻어도 무조건 최다 득표자가 승자가 됩니다. '메커니즘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선거 제도는 어떻습니까?
"별로 바람직한 제도가 못됩니다. 가령 A, B, C 세 후보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매스킨 교수는 종이를 가져와 연필로 열심히 적어가면서 설명했다). 유권자의 35%가 A-B-C 순을, 33%가 C-B-A 순을, 32%가 B-A-C 순으로 지지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유권자의 선호도를 따져보면 압도적 다수인 65%(33%+32%)가 A보다는 B를, 역시 압도적 다수인 67%(35%+32%)가 C보다는 B를 선호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도 B가 아니라 단순한 다수결 원칙에 따라 35%를 얻은 A가 당선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반영한 선거 제도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런 선거 제도는 유력 후보가 아닌 나머지 제3의 후보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쳐 결과를 바꿔버릴 수도 있어요. 가령 이변을 일으켰던 지난 2002년의 프랑스 대선을 생각해 보세요. 우파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 좌파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가 경합을 벌이는데,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파 르펜이 2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는 바람에 유력 후보였던 조스팽이 1차 투표에서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그렇다면 이런 대선 제도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나요?
"가령 미국 샌프란시스코시(市)는 시장 선출 방식을 이렇게 바꿨어요. 유권자들이 단 한 명의 후보만 찍는 게 아니고, 1순위 후보를 찍고, 나머지 후보들에 대해서도 차순위를 매길 수 있게 했어요. 이 경우, 순위에 따라 가중치를 주고 이를 나중에 합산하면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득표에 좀 더 잘 반영할 수 있게 되지요. 가령 나는 C 후보를 찍지만, 절대로 B후보가 당선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C 후보를 1순위로, A후보를 2순위로, B후보를 3순위로 매기는 것이지요. 그에 따라 가중치를 주면 득표 결과에서 그런 유권자 의중이 반영될 수 있어요."
―한국 대선에는 10여명의 후보가 나옵니다. 그중에서 유의미한 후보는 2~3명에 불과하지요. 나머지 후보는 유권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일일이 다 순위를 매기나요? 그런 제도가 과연 신빙성이 있을까요?
"유권자가 후보 10명 모두에 대해 다 순위를 매길 필요는 없습니다. 유권자에게 옵션을 주는 거지요. 원하는 1명만 찍을 수도 있고, 2~3명에게만 순위를 매길 수도 있게 하는 것이지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위기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세요?
"적절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은 데서 온 실패라고 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기본적으로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너무 많이 대출을 해주는 바람에, 은행이 너무 많은 리스크(위험)를 떠안게 된 데서 비롯됐습니다. 문제는 금융 부문이지요. 과도한 대출을 해주는 것이 한 은행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은행들에도 영향을 미쳐 너도나도 대출 경쟁이 벌어졌지요. 은행마다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지 못하게 하는, 적절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입니다."
―미국은 왜 적절한 규제를 통해 심각한 위기를 막지 못하고 금융회사를 방치한 것인가요?
"하하, 좋은 질문인데요. 정부가 개입하는 것보다는, '시장이 규제보다 훨씬 낫다'는 이념에 미국이 그동안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이지요. 이제, 좋은 규제를 창출하는 것은 '메커니즘 디자인'의 영역이 되겠네요, 하하하."
―그렇다면 교수님은 적절한 금융 규제 장치만 있었더라면 이번 같은 금융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시는 건가요?
"역사적으로 위기는 늘 있었습니다. 위기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해도, 적절한 규제를 통해 위기의 강도를 줄일 수는 있었겠지요."
―그동안 주류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가정 위에서 전개되어 왔습니다. 이번 위기로 인해, 기존 경제학은 더 이상 쓸모없어진 것인가요?
"설사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전체 시스템이나 시장이 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건 아닙니다.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이 되어, 그 결과로 사회 전체에 비효율적, 비합리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합리성만으로, 규제받지 않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건 아닙니다.
가령 환경오염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운전을 하면 매연을 내뿜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운전하는 것이, 내게는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내뿜는 매연이 당장 내게 심각한 영향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모든 개개인이 스스로의 관점에서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결정을 내려서, 반드시 전체에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닙니다. 정부가 세금을 부과한다든가, 적절한 환경 규제를 가해 오염을 막아야 할 상황이 되어버리지요. 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많은 오염을 배출하지 않도록 규제를 가하는 것처럼, 은행도 너무 많은 리스크를 떠안지 않게 하는 규제가 필요합니다."
―글로벌 위기 이후 금융 산업의 규제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어떤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하나는 상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최소한의 대출 기준을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은행이 과도한 위험을 떠안지 못하도록 레버리지에 대한 규제를 만드는 것이지요."
―이번 위기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가장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린다고 여겨져 온 미국 월가에서 시작돼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습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은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요?
"메이도프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이번 위기 때 사기 사건도 드러났습니다. 물론 윤리적인 측면을 더 강조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월가 금융맨들의 부도덕한 행위에서 이번 위기가 초래됐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개별 은행의 이해관계와 전체 금융 시스템 간의 충돌(conflict) 상황이 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따라서 금융인들에게 윤리 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부가 룰(rule)을 만드는 것입니다. 금융 산업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위기의 원인이 된 이런 충돌 상황을 줄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원래 수학을 전공하셨는데, 왜 경제학으로 바꾸셨나요?
"저명한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 교수의 영향이 컸습니다. 수학은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경제학은 세상을 돕는 데 힘을 발휘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특히 매력을 느꼈습니다."
―노벨상 수상 이후 삶이 달라졌나요?
"지금처럼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하하하. 전 세계로부터 초청을 받아 여행도 많이 하게 됐지요. 하지만 노벨상이 결코 '목표'는 아니었어요. 수상 기회가 극히 적은 노벨상이란 일종의 복권처럼 주어지는 행운이니까 내가 설정할 수 있는 합리적 '목표'는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심을 가진 분야에 꾸준히 집중해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겠지요."
에릭 매스킨 교수는
1950년 미국 뉴욕 태생. 1972년 하버드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1976년 응용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1977~1984년)와 하버드대(1985~2000년)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데 이어, 2000년부터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있는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석좌교수로 있다. 1930년 설립된 고등연구소는 수학·자연과학 등 순수 학문의 연구로 명성이 드높은 세계적 연구기관이다. 과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연구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이 연구소 출신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12명에 달한다. 아인슈타인과 인연이 남다른지, 현재 매스킨 교수가 살고 있는 고등연구소 사택은 예전에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그동안 학술지에 110여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경제연구 리뷰(Review of Economic Studies)' 등 주요 학술지의 편집장도 역임했다. 2003년 계량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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