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뉴욕대 교수 | 2009/10/24
차입금 많은 은행·기업들의 실체 세계경제 요동치며 드러나
정치 작동 안 하고 사회 기반시설 노후
한국·인도네시아가 오히려 매력적
널리 알려진 경제관련 개념들도 극심한 경제위기 상황에선 거의 들어맞지 않는다. 지난 24개월 동안 세계 경제는 그 어떠한 경기 침체보다 혹독한 시련을 거쳤다.
이제는 호황기에 만들어진 개념들, 예를 들면 불투명한 시장에도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나, 미국 소비자들의 확고부동한 지위, 규제 철폐의 지혜 같은 개념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평가해볼 때다.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채 부풀려진 개념 중의 하나가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이른바 BRIC(브릭) 국가들이 향후 몇년간 자기 생각대로 목소리를 키울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 BRIC이라는 개념은 지난 2003년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처음 등장했는데, 모두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75%는 옳았고, 그래서 당시 다른 경제 예측들에 비해 좋은 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2008년의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BRIC 4개국 중의 하나는 수준 미달임이 드러났다. BRIC 국가들의 주요 경제 지표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난다.
지난 몇년간 원유 및 가스 가격의 급등이라는 뜻밖의 횡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의 약점이 감춰져 있었다. 특히 차입금이 많은 은행과 기업들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다가, 세계 경제가 요동치면서 갑자기 약점들이 다 드러나 버렸다.
러시아는 사회 기반 시설이 노후화된 데다, 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인구 감소 추세도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원자재 가격이 다소 회복되긴 했으나, 에너지 부문에서도 최근 몇해 동안 생산 감소를 경험했다. '혹시나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강제 몰수할지도 모른다'는 해외 투자자의 두려움도 일부 작용한 탓이다. 러시아 경제가 중앙집중식으로 회귀하는 가운데, 러시아 국부(國富)펀드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추락하는 러시아 경제를 놓고서도 연구소와 학자들, 투자자들은 다양한 제안을 했다. 'BRIC'이란 약자에 동유럽과 터키를 포함시켜 'BRICET'로, 또는 한국까지 추가해 'BRICKETs'로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멕시코만 포함시켜 'BRIMC'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다양한 개정안이 나왔지만, 여기서 러시아를 빼자는 의견은 없었다.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재앙의 징조가 드리웠는데도 말이다. 러시아가 세계 최대의 핵무기 재고를 보유하고 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국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BRIC 국가들보다 병세는 훨씬 심각하다.
경제적 잠재력과 경제 기초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러시아보다는 한국이 BRIC 개념에 훨씬 더 강하게 들어맞는다. 비록 한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와 난민 유입의 가능성이라는 북한발 악재를 치명적 약점으로 갖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비슷한 개념이 터키에도 적용될 수 있다. 터키는 금융 부문이 강하고, 내수 시장이 번창하고 있으며, 중동 지역 의 에너지를 둘러 싼 정치 역학 관점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고, EU 가입을 추진 중이며, 인종적인 측면에선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연결돼 있다.
러시아 대신 BRIC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는 나라 중에 인도네시아를 주목해볼 만하다. 세계 최대의 모슬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중산층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고 있으며, 세계적 불황에서도 두드러진 경제적 성과를 거뒀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인도네시아는 러시아를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인도네시아는 베네수엘라와 더불어, 최근 기울어져가는 미국의 리더십을 적극 응원하는 나라다. 더욱이 인도네시아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인종 구성과 넓게 퍼져 있는 영토에도 불구하고 군사독재 체제에서 빠르게 민주주의로 전환했다.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2004년의 쓰나미(초대형 지진·해일) 피해, 급진적인 이슬람 세력의 등장, 정국 불안 같은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극복해 왔다. 1인당 GDP는 여전히 낮지만, 잠재력이 높아 단연 돋보이는 국가다. 또한 러시아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수출 의존도가 낮다. 목재·야자유·석탄 같은 천연자원에, 해외 주요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는 공무원 부패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고, 구조 개선에도 힘써왔다. 인구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3000만명으로, 세계 4위의 인구대국이다. 러시아와 독일 인구를 합한 것과 같은 규모다.
하지만 한 번 인기를 얻은 용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러시아는 BRIC을 실질적인 국제기구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6월 BRIC 4개국 지도자들은 러시아에서 제1회 BRIC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그 정상회의에서는 미국에 맞서 도발적인 제안도 했다. 달러화를 국제 결제 통화의 지위에서 밀어낼 것을 희망한다고 각 회원국이 밝혔다. 지난 4월에 열린 G-20 정상회담에 앞서, 이들 4개국은 세계경제 시스템의 규칙을 바꾸겠다는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금융시장에서 'BRIC 인덱스펀드'는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BRIC 대신 '넥스트 11' 또는 'N-11'이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해 BRIC에 투자했던 자금을 분산 투자했다. 이 'N-11' 국가에는 방글라데시·이집트·인도네시아·이란·멕시코·나이지리아·파키스탄·필리핀·한국·터키·베트남이 포함된다. BRIC 4개국과 더불어, N-11 국가들이 신흥 경제국의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러시아 스스로 이 같은 지위 격하를 알아차린 듯하다. 러시아가 BRIC 정상회의를 개최하려고 강하게 로비했으며, 정상회의 비용을 대부분 부담했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는 왜 자신의 약점을 서둘러 노출시키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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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입금 많은 은행·기업들의 실체 세계경제 요동치며 드러나
정치 작동 안 하고 사회 기반시설 노후
한국·인도네시아가 오히려 매력적
널리 알려진 경제관련 개념들도 극심한 경제위기 상황에선 거의 들어맞지 않는다. 지난 24개월 동안 세계 경제는 그 어떠한 경기 침체보다 혹독한 시련을 거쳤다.
이제는 호황기에 만들어진 개념들, 예를 들면 불투명한 시장에도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나, 미국 소비자들의 확고부동한 지위, 규제 철폐의 지혜 같은 개념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평가해볼 때다.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채 부풀려진 개념 중의 하나가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이른바 BRIC(브릭) 국가들이 향후 몇년간 자기 생각대로 목소리를 키울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 BRIC이라는 개념은 지난 2003년 골드만삭스 보고서에 처음 등장했는데, 모두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75%는 옳았고, 그래서 당시 다른 경제 예측들에 비해 좋은 점수를 얻었다.
하지만 2008년의 경제위기를 겪는 동안 BRIC 4개국 중의 하나는 수준 미달임이 드러났다. BRIC 국가들의 주요 경제 지표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난다.
지난 몇년간 원유 및 가스 가격의 급등이라는 뜻밖의 횡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의 약점이 감춰져 있었다. 특히 차입금이 많은 은행과 기업들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다가, 세계 경제가 요동치면서 갑자기 약점들이 다 드러나 버렸다.
러시아는 사회 기반 시설이 노후화된 데다, 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인구 감소 추세도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원자재 가격이 다소 회복되긴 했으나, 에너지 부문에서도 최근 몇해 동안 생산 감소를 경험했다. '혹시나 러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강제 몰수할지도 모른다'는 해외 투자자의 두려움도 일부 작용한 탓이다. 러시아 경제가 중앙집중식으로 회귀하는 가운데, 러시아 국부(國富)펀드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추락하는 러시아 경제를 놓고서도 연구소와 학자들, 투자자들은 다양한 제안을 했다. 'BRIC'이란 약자에 동유럽과 터키를 포함시켜 'BRICET'로, 또는 한국까지 추가해 'BRICKETs'로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멕시코만 포함시켜 'BRIMC'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다양한 개정안이 나왔지만, 여기서 러시아를 빼자는 의견은 없었다. 러시아 경제에 심각한 재앙의 징조가 드리웠는데도 말이다. 러시아가 세계 최대의 핵무기 재고를 보유하고 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국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BRIC 국가들보다 병세는 훨씬 심각하다.
경제적 잠재력과 경제 기초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러시아보다는 한국이 BRIC 개념에 훨씬 더 강하게 들어맞는다. 비록 한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와 난민 유입의 가능성이라는 북한발 악재를 치명적 약점으로 갖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비슷한 개념이 터키에도 적용될 수 있다. 터키는 금융 부문이 강하고, 내수 시장이 번창하고 있으며, 중동 지역 의 에너지를 둘러 싼 정치 역학 관점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고, EU 가입을 추진 중이며, 인종적인 측면에선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연결돼 있다.
러시아 대신 BRIC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는 나라 중에 인도네시아를 주목해볼 만하다. 세계 최대의 모슬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중산층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갖고 있으며, 세계적 불황에서도 두드러진 경제적 성과를 거뒀다.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인도네시아는 러시아를 대체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인도네시아는 베네수엘라와 더불어, 최근 기울어져가는 미국의 리더십을 적극 응원하는 나라다. 더욱이 인도네시아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인종 구성과 넓게 퍼져 있는 영토에도 불구하고 군사독재 체제에서 빠르게 민주주의로 전환했다. 19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2004년의 쓰나미(초대형 지진·해일) 피해, 급진적인 이슬람 세력의 등장, 정국 불안 같은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극복해 왔다. 1인당 GDP는 여전히 낮지만, 잠재력이 높아 단연 돋보이는 국가다. 또한 러시아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수출 의존도가 낮다. 목재·야자유·석탄 같은 천연자원에, 해외 주요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는 공무원 부패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고, 구조 개선에도 힘써왔다. 인구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3000만명으로, 세계 4위의 인구대국이다. 러시아와 독일 인구를 합한 것과 같은 규모다.
하지만 한 번 인기를 얻은 용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러시아는 BRIC을 실질적인 국제기구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6월 BRIC 4개국 지도자들은 러시아에서 제1회 BRIC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그 정상회의에서는 미국에 맞서 도발적인 제안도 했다. 달러화를 국제 결제 통화의 지위에서 밀어낼 것을 희망한다고 각 회원국이 밝혔다. 지난 4월에 열린 G-20 정상회담에 앞서, 이들 4개국은 세계경제 시스템의 규칙을 바꾸겠다는 공동성명도 발표했다.
금융시장에서 'BRIC 인덱스펀드'는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BRIC 대신 '넥스트 11' 또는 'N-11'이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해 BRIC에 투자했던 자금을 분산 투자했다. 이 'N-11' 국가에는 방글라데시·이집트·인도네시아·이란·멕시코·나이지리아·파키스탄·필리핀·한국·터키·베트남이 포함된다. BRIC 4개국과 더불어, N-11 국가들이 신흥 경제국의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러시아 스스로 이 같은 지위 격하를 알아차린 듯하다. 러시아가 BRIC 정상회의를 개최하려고 강하게 로비했으며, 정상회의 비용을 대부분 부담했다는 사실에 놀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는 왜 자신의 약점을 서둘러 노출시키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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